과학 다반사

5. 술의 과학
5.2 맥주 part 1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고 처음 경험했던 술은 맥주였습니다. 그 뒤로는 주야장천 소주만 마시도록 강요당했지만요…. 특히,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던 치킨집에서 맛본 치맥은 이렇게 맛있는 조화가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는 마트 내 캔 맥주의 저렴함에 놀랬고(다음에 맥주 펍에서는 비쌈에 다시 놀랍니다), 그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한참 돈이 모자라던 대학원 시절, 힘들게 연구한 성과가 저널에 게재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맥주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제한된 예산으로 어떤 새로운 맥주를 마실지 고민하면서 한 시간 넘게 맥주병을 들었다 놨다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보다 맥주에 쓸 수 있는 예산이 열 배 이상 늘어난 지금도, 다양한 수입 맥주가 한편 가득 채워진 대형마트에서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혼자 오늘 마실 맥주를 두고 고민합니다. 세상은 넓고 마셔볼 맥주는 많습니다.
  맥주는 세상에서 물, 차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입니다(ref). 고대 이집트(기원전 5000년)의 파피루스에 맥주 조리법이 적혀있는 기록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맥주는 발효주입니다. 발효주란 미생물(효모나 누룩같은 균사류)이 산소 없이 당분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대사 과정을 통해서 생성된 에탄올이 함유된 음료입니다. 대표적인 발효주로는 맥주 외에도 포도주, 막걸리, 청주 등이 있습니다. 당분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기 때문에, 탄수화물이 함유된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시켜 생산합니다. 포도주는 포도를, 막걸리는 쌀을, 맥주는 보리나 밀의 맥아를 주원료로 발효합니다. 엿기름이라고 불리는 맥아는 밀, 보리 등을 물에 적셔 싹이 나게 한 후 말린 것입니다. 맥아는 곡물의 전분을 포도당이나 말토오스, 말토트리오스, 말토덱스트린과 같은 단당류에서 올리고당까지 짧은 당으로 변형시키는 α-아밀레이스나 β-아밀레이스 효소가 풍부합니다. 맥아의 당분이 효모에 의해서 잘 발효되게 하고 맥주의 풍미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로스팅과 분쇄과정을 거칩니다.
  분쇄한 맥아는 다른 곡물들과 함께 물에 넣고 섞어 죽과 같이 만드는 담금 과정(mashing)에 사용합니다. 담금 과정은 엿기름(맥아)으로 밥을 삭혀 식혜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작업입니다. 일정 온도(60~70°C)로 가열하여 맥아의 당 분해 효소가 곡물의 탄수화물을 효율적으로 분해해 발효에 적합한 당분이 풍부한 맥아즙(wort)이라는 용액을 만들게 합니다(How To Brew: Everything You Need to Know to Brew Great Beer Every Time by John Palmer, 2017, Brewers Publications; 4th Edition). 추가로 곡물을 첨가하지 않고 그냥 맥아 자체로 맥아즙을 만들기도 하지만, 쌀이나 옥수수를 첨가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곡물 찌꺼기를 거른 맥아즙은 끓임조(kettle)에서 홉이나 다른 향료와 함께 끓여줍니다. 맥아즙을 끓이면 당 분해를 하던 효소를 열변성 시키고 중간에 멈추게 합니다. 또한, 용액 내 단백질을 침전시키고, 맥아즙을 농축하고 살균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삼과 식물의 꽃인 홉은 맥주 특유의 맛과 향을 더하는 재료입니다. 맥주에 홉이 사용된 첫 사례는 9세기 문헌에서 발견됐습니다(Hornsey, Ian S. (2003). A History of Beer and Brewing. Royal Society of Chemistry). 현재는 모든 맥주에 홉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홉의 알파산, 베타산, 엣센셜 오일 성분 등이 맥주의 향에 관여합니다. 알파산 중에서 가장 주요한 분자는 후물론(humulone)인데, 맥아즙을 끓일 때 이성질체화(Isomerization)라는 작용으로 구조가 바뀌게 되는데, 이를 통해 맥아즙에 녹아들어 맥주가 쓴맛을 가지게 합니다. 루프론(lupulone)이라는 베타산은 발효 과정 중에 산화되면서 알파산과 다른 씁쓸한 맛의 원인입니다. 홉에 함유된 에센셜 오일은 지금까지 약 250여 종이 분석됐습니다. 이 중 미르센(myrcene), 후물렌(humulene), 카리오필렌(caryophyllene) 세 가지가 맥주 향에서 가장 주된 역할을 합니다. 이들 분자는 휘발성이 높아서 주조과정 중에 증발하기 쉬우므로, 발효 과정이 끝난 후에 홉을 넣거나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맥주에 첨가되게 합니다.

​글 그림 김준곤

2020년 9월 14

  홉과 함께 가열했던 맥아즙은 효모가 첨가될 수 있는 온도로 냉각됩니다. 냉각된 맥아즙은 발효 탱크에서 효모에 의해서 발효됩니다. 효모는 물속에서 산소 없이 당분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부산물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앞에서 몇 번 발효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산소 없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호흡을 합니다. 호흡을 통해서 체내로 산소를 들이고, 그 산소는 포도당을 세포 내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ATP라는 분자로 치환하는 데 활용됩니다.그 부산물이 이산화탄소와 물입니다. 그래서 산소가 부족하면 뇌에서 포도당을 분해할 수가 없어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효모는 산소 없이 포도당을 분해합니다. 그리고 부산물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분자가 물에 녹아서 맥주가 됩니다. 에탄올은 녹아서 술이 되게 하고, 이산화탄소는 탄산수가 되게 합니다. 맥주 효모는 전통적으로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로 분류됩니다. 에일 효모는 에일을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로 에일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는 맥아즙의 상면, 즉 윗부분에서 발효합니다. 에일 효모는 일반적으로 따뜻한 온도(통상 15~25°C)에서 발효에 사용되며, 보통 2~3주의 시간이 걸립니다. 라거효모(Saccharomyces pastorianus 혹은 Saccharomyces carlsbergensis)는 라거를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입니다. 이 하면 발효 효모는 1~6개월에 걸쳐서 천천히 발효하며, 5-10°C의 낮은 온도에서 사용됩니다. 
  발효가 완료된 맥주는 후발효라고 불리는 숙성과정을 거칩니다. 맥주의 숙성을 통해서 향미를 추가하거나, 제거합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달 동안 숙성한 후에 맥주를 여과하여 제품으로 나오게 됩니다. 숙성과정에서는 남은 발효성 추출물을 저온에서 남아있는 효모를 이용하여 2차 발효를 시키기도 합니다. 2차 발효 중에는 맥주 안에 남아있는 당분을 발효하기 위해서 효모를 추가하기도 합니다. 2차 발효로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발생하여 더 높은 탄산 감을 느낄 수 있게도 해줍니다. 인위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맥주는 단순 여과 뒤 생맥주로 판매되거나, 여과 및 살균과정을 거친 뒤 병이나 캔에 주입되어 유통됩니다. 생맥주에는 적은 수라도 효모나 미생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 시일이 지나면 변질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저온살균을 이용하여 효소를 불활성화하기도 합니다. 
  맥주 캔의 옆면에 붙어있는 라벨에 원재료를 정제수, 보리 맥아, 밀 맥아, 호프, 효모 정도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재료가 어느 지역에서 나왔고,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느냐에 따라서 맥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집니다. 다음 편에서는 다양한 맥주의 세계와 그 차이를 분자 수준에서 개략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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